나는 노사모였고.
지금도 노사모라는 아이덴티티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게 딱지를 맞았음에도 노사모 라는 아이덴티티를 포기할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되려 자랑스럽기도 하며, 역사적 당위성을 가졌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블로그도 그에 대한 먹먹함과 미안함과 좌절감이 흠뻑젖은 오욕의 기록이다.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몇사람이 있는데 그렇기에 그를 쉽게 놓기 어려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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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사모가 되었냐면...
이야기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경상도 출신이다.
일명 한나라당 밖에 모르고, 그나마도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그런 동네다.
뉴스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람들이 부모님 친구인 그런 좁디좁은 동네.
매번 선거만 하면 그나물에 그밥이 뽑히는,
정치적으로는 꼴통이라고 이야기 하는 그런 동네 출신이다.
노통의 출마선언문 마따나,
부모님은 대학가서 데모하지 마라 그런이야기를 해주신 공무원이었다.
이전의 정권들이 보여준 트라우마 탓인지,
아들이 잘못될까 조심해라 라는 이야기를 하셨고,
덕분에 적당히 착한 공부잘하는 맏이로 그냥 그렇게 컸다.
그것은 적당히 보수적일수 있는 그런 토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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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운동권이었던 그녀석은 클라스 메이트였다.
사실 관심도 없었고,
이해하기도 귀찮았다.
나는 일부는 이해하지만 그들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1학년 여름방학때
숙모님이 돌아가셨다.
인간에 대한 허무함과 무상함.
과연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라는 화두를 가슴속에 가지게 되었다.
그해. 그 뒤는 도서관에서 종교와 철학을 고민했던 시기였다.
2002년 월드컵이 있었다.
도로의 즐거움을 맛봤다.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
한국이 월드컵에서 첫승을 거두던 그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탈리아전 역전이었던가..
대학로에서 종로를 거쳐 신촌을 지나 월드컵 경기장까지 행진했던 기억.
잊을수 없다.
무엇인가 할수 있다는 자신감.
그것은 승리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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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후보를 알게 되었다.
그의 인생이 끌렸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저 운동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렸고,
당위성을 이야기 했다.
그 당위성이란 "사람이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도덕률"을 이야기 했다.
맞다. 모두 그의 말이 맞다.
그렇기에 그의 호소는 짙었다.
나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그런 거창한 고민들.
맞다.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노사모가 되었고.
몇번의 자원봉사와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난 말할수 있다.
노통은 내가 만든게 맞다.
노통은 내가 만든 대통령이다.
노통은 내가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다.
나는 그렇게 탈 한나라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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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실망도 제법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정책도 있었다.
당연히 그는 모든 사람과 같이 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를 노사모의 노무현이 아닌
대한민국의 노무현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나는 그후 대학에서 정치학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고.
대한민국 정치에 대해 공부 했다. (물론 전공은 정치가 아니다.)
좀더 자세히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대학원도 정치학과를 가고 싶었었다.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사회를 위해서 해야할 일.
어떻게 살아가야할것인가.
그런 것들에 대한 기준점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
이는
노통이 보여준 열정.
노통이 보여준 인품
노통이 보여준 진심에서 배운것이다.
그를 통하여.
나는 배우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행동해야 함을 깨달을수 있었다.
(아직 행동을 하진 않지만.)
돌이켜 보건대.
그는 나의 최고의 스승이었고.
그렇기에
인생의 목적지를 하나 세울수 있었다
철없는 어린 것의 치기라 해도 좋다.
하지만
그는 그런 대접을 받을 가치가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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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일개 시민이, 거창하게 지켜준다 라는 표현을 쓰는건 참 오만한데
솔직한 생각을 하자면 그러하다.
나는
그가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진 않는다.
당연히 그도 인간이고,
인간이고 싶어 했다는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항상 강한 노무현으로 남아있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란것도 알고 있다.
그건 너무나 이기적인 내 생각인것도 맞다.
오늘은 차분하게 그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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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영정 사진.
이제 우리는 더이상 그를 웃는 모습으로 볼수가 없다.
역사의 한페이지에 묻어야 한다는 사실. 서글프다. 진심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고시 합격을 했을 당시의 신문.
기득권에게 눌렸을 그가 참 서글프다.
양복 살돈이 없어서.
사법연수원 동기들 사이에 잠바 입고서 당당했던 저시절.
노간지 라는 별명이 붙은 그.
소탈한 담배샷이 동네 아저씨라고 할만한 느낌.
그도 어떤면에선 그냥 동네 어르신중 하나 였던 거다.
노태우가 그렇게도 외친 "보통사람"은 노통이 최초가 아닐까.
그의 인생을 나타내는 사진을 꼽으라면.
이 사진이 그 중 한장이 되리라.
수많은 전경들앞에서도 꿋꿋하게 할말을 다하고,
자기 주장과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
정말로 대한민국에 두번 나오기 힘든 그런 사람이란건 이 사진이 이야기해준다.
시대의 비극..
그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무서운 그시절을 사람들과 함께...
이는 보통 용기가 아니다. 그의 연설이 힘이 있는 이유는 그의 진솔한 삶에서 나온다.
남자나이 40에는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 말처럼.
그의 얼굴에 그의 표정은 괜히 얻어진것이 아니다.
이의 있습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않고.
불의를 고쳐야 한다고 꼿꼿하게 주장하며.
그렇게 티끌조차 부끄러워했던 그.
그리고 승리했었다.
대한민국의 태극기 앞에 부끄럽지 않은 그로.
그렇게 당당하게 승리했었다.
나는 그가 그리울거다.
나는 그가 아주 많이 그리울거다.
동영상 링크 - 2009/05/25 돌발 영상 - 꿈
P.S.
Episode #1
봉화마을 조문에 '스님'들이 많이 참석하자 한 기자가 故 노무현 前대통령 측근들에게 물었습니다.
"故 노무현 前대통령 종교가 '불교' 였습니까 ?"
"아닙니다.故 노무현 前대통령의 종교는 '국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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